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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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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과 확장 == ||<table align=center><nopad>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p_of_Auschwitz_and_environs%2C_1944.jpg|width=100%]] || || 아우슈비츠 지도 노란색 부분이 수용소 부지, 보라색이 [[이게파르벤|IG 파르벤]] 공장과 SS기지다. || ||<nopad> [[파일:Holocaust Poland.png|width=100%]] || || 좌측하단 쪽 Auschwitz-Birkenau라고 쓰여진 곳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한 [[폴란드 제2공화국]] 영토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들의 지도이다. 절멸 수용소들은 해골이 들어간 검은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전술했듯이 좌측 아래 [[크라쿠프]] 근교에 있는 것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그 외 검은 사각형들은 절멸 수용소들을 제외한 여타 수용소들, 육각성은 [[게토]], 검은 배경이 없는 해골은 집단 학살 발생지이다.] || 아우슈비츠는 처음 유대인 절멸을 목적으로 세워지진 않았다. 1939년 [[폴란드 침공]] 후 나치의 첫 목표는 폴란드 지식인의 제거였고 이에 따라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할 목적으로 1940년 5월 세워졌다. 초기에 이 수용소는 노동 수용소의 성격을 띠었고 다른 노동 수용소와 마찬가지로 무작위 처형이 자주 일어났지만 아직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1941년 6월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된 뒤 엄청난 수의 [[소련군]] [[포로]]를 잡은 나치는 아우슈비츠에도 소련군 포로를 이송했고 밀려드는 소련군 포로를 위해 '자리를 만들 목적으로' 1941년 9월 첫 대량 학살이 저질러졌다. 이때 수용소는 '실험'으로 소련군 포로 650명과 250명의 폴란드인을 수용소 지하의 블록 11[* 수용소의 규칙을 어긴 제소자들을 처벌하고 고문하는 곳이었다. 독방들이 있었는데, 작은 창문이 나 있는 90cm x 90cm의 공간에 4명이나 집어넣고 학대했다.]에 모아 놓은 뒤 [[치클론 B]]를 투입했는데, 실험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치클론 B를 이용해 재소자들을 학살했다. 나치는 1941년 10월 소련군 포로를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해 아우슈비츠 1 수용소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제2 수용소인 거대한 비르케나우 수용소를 세웠는데, 공사에 동원된 소련군 포로들은 식량이고 보급품이고 모두 모자라서 굶어죽는 건 다반사이며, 인육으로 생존해야 할 정도로 처절한 상황이었다. 결국 41년부터 42년까지 비르케나우를 짓는 동안 10,000명이 넘는 소련군 포로는 겨우 수백 명이 살아남았다. ||<table align=right><table width=200><nopad> [[파일:오딜로 글로보츠닉.jpg|width=100%]] || || [* [[총독부(독일)|폴란드 총독부]] [[루블린]]의 SS경찰 사령관이었던 친위대 중장 [[오딜로 글로보츠닉]](Odilo Globočnik).][* 보통 힘러가 지어준 지구라는 뜻의 '글로부스'(Globus)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한편 1941년 10월 하인리히 힘러는 친위소장(Brigadeführer. 여단지도자) 오딜로 글로보츠닉이 수장으로 있는 폴란드 총독령 [[루블린]]의 SS경찰 본부에 폴란드 유대인의 절멸을 구두로 지시했다. 이에 따라 '''라인하르트 작전(Operation Reinhard)'''이 시행되어 폴란드 각지에 5개의 절멸 수용소[* 신설된 곳은 [[트레블링카]], [[베우제츠]], [[소비보르]] 세 곳이다. 이들은 라인하르트 작전 이전부터 운영 중이던 [[헤움노 절멸수용소]]와 더불어 완전한 학살공장이었다. 이에 더불어 [[아우슈비츠]]와 [[마이다네크]]가 노동 겸 절멸 수용소로 개조되었다.]가 새로 생겼다. 1942년 1월, 체코 총독이자 체코의 전 국가 보안 본부장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주도한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Endlösung der Judenfrage)'이 "절멸(Vernichtung)''로 결정되면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도 절멸 수용소로 개조되었고 1942년 초반부터 1945년 1월 소련군에 해방되기 불과 며칠 전까지 학살이 자행되었다. 다른 절멸 수용소들이 소련군이 당도하기 한참 전인 1943년 말, 라인하르트 작전이 취소되자마자 폐쇄된 것과는 달랐다. 전쟁이 지속되자 [[이게파르벤]]사는 이곳에 화학 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이를 위해 아우슈비츠 제3 수용소가 건설된다. [[아스피린]]의 제조사로 유명한 [[바이엘 주식회사|바이엘]]과 [[BASF]], [[아그파]], 구 [[훽스트]][* 현재 프랑스 기업인 사노피-아방티스에 흡수되어 사라졌다.]가 이게파르벤을 구성했던 회사들인데 2차 대전 이후로도 크게 소송에 휘말리지 않고, 거의 그대로 전후 복구의 주역이 되었다. 다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426141|강제 노역 배상기금]]에 참여하여 간접적으로 어두운 과거를 인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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